Book Review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낙태와 태아의 생명권 논란에 대한 합의로 '언와인드'란 제도가 시행되는 어느 미래의 디스토피아 세계관이다.

사실은 생명권 뿐 아니라, 특정 세대를 통제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고, 

후반부에서는 그러한 목적성을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비이성적이고 부당한 사회적 합의를 절대적 권력으로 둔갑시켜서 

아무도 그에 대한 의문조차 품지 못하게 한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침범할 수 있는 합의라니, 아니 오히려 통제된 동의로 보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작가는 ‘능동적 시민’이라는 단체를 등장시킨다.

언뜻 보면 시민단체 같지만, 실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움직이는 권력 집단이다.

겉으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모든 논의가 ‘언와인드’라는 프레임 안에서만 이뤄진다.

자유로운 토론이 아니라, 정해진 틀 속의 자유.

여론조작의 방식 뿐 아니라 후반부에 나오는 체제를 지키기 위해 '대안'을 제거하는 방식까지도.

이건 음로론자들이 좋아할법한 설정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기득권의 본능적인 자기보존 방식에 더 가깝다는 걸 고려할때

낯설지 않을 뿐 아니라 불편할 만큼 현실적이다. 

 

그리고 언와인드된 신체조각들로 재조합된 리와인드 '캠'

흔히 하는 말로 '몸이 기억한다'라고 하듯 각각의 신체조각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의 집합체 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이고 즉각적인 자아가 형성된다는 점은 작가가 안이하게 설정하지 않았나 싶다.

(같은 기억을 갖고 있는 신체들이 리와인드 되면 동일한 자아가 유지되는 후반부 설정도.. 음..)

 

비슷한 맥락에서 오히려 <가여운 것들>의 벨라 역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지만, 

천천히 세상을 배우고 감적을 익히며 자아를 만들어 가는 것과 대비된다. 

뭐. 철학적 설정이 다를 순 있겠다. 

 

결말 부분의 개인적 구원이 이뤄지는 장면에서는 가족구성원이 거기 도달하기까지의 갈등과정이 생략되어서 아쉬웠고,

군중들은 또다른 합의를 기다리는 집합체 같아 보여서 조금 소름.

 

누구는 수확자 시리즈보다 못하다고 하던데, 

내게는 리뷰를 쓸수록 계속 생각할 거리가 만들어지는 소설이다. 

 

오랜만에 별 다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