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활자잔혹극

 

첫 문장부터 유니스가 글을 읽고 쓰지 못했기 때문에 커버데일 가족을 죽였다고 선언하고 『활자잔혹극』이란 제목에 얽매여서 자연스럽게 이 모든 비극의 출발점을 ‘문맹’에서 찾게 된 거 같다.

 

여기서 활자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를 상징하고 주인공인 유니스는 글을 읽지 못함으로서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자신의 감정을 나누는 경험도 하지 못하여 연민이나 사랑과 기쁨과 같은 기본적인 감정을 지니지 못했다는 식으로 읽다가

(텔레비전만 보는 묘사도 그런 이해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다만,,, 이런 해석은 조금 극단적인데,,문맹이라고 해서 기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맞는 걸까.. 라는 지점에 이를 때쯤

 

원제가 『A Judgement in Stone』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오히려 ‘활자’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서로에 대해 내린 판단과 오해였다.

 

유니스는 커버데일 가족의 호의와 관심을 자신의 비밀을 폭로하려는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커버데일 가족 역시 유니스를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만 해석한다.

누구도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한번 내려진 판단은 관계 속에서 수정되지 않은 채 점점 굳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잔혹함은 어쩌면 문맹 그 자체보다 서로에 대한 오해를 끝내 수정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커버데일 가족은 유니스 파치먼이 얼마나 일을 잘 할지, 자신들에게 공손한 태도를 취할지 궁금했다. 그녀에게는 개인 욕실과 텔레비전, 안락한 의자 몇 개와 푹신한 침대를 제공해 주었다. 짐말에게는 좋은 마구간과 여물통이 필요하니까. 그녀가 이에 만족해서 앞으로도 계속 머물러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들은 유니스 또한 한 명의 인간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유니스가 오기로 한 9월 9일 토요일이 되었지만, 커버데일 가족은 그녀의 과거가 어떠했는지, 이 집에 오는 일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지, 자신들에게 닥친 것과 똑같은 희망과 공포를 그녀도 느꼈는지에 대한 고려는 하지 않았다
그 시점에서 그들에게 있어 유니스는 기계에 지나지 않았다. 기계에게서 만족스러운 효과를 얻으려면 적당히 기름을 치고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도록 계단에서 거치적대는 물건을 치우기만 하면 족하다.

 

“또 찾아보면 되죠. 내가 바보 같다는 거 알아요, 조지. 하지만 난 우리와 같은 부류의 사람을 고용할 수 있다는 헛된 상상을 해요. 멋진 저택의 가사일을 기꺼이 맡아 주려는, 적당히 교육받은 사람이면 좋을 텐데.”
“이른바 ‘숙녀’ 말이로군.”

 

유니스는 수줍어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펼쳐져 있는 책이 두려워 아이에게서 시선을 돌렸을 뿐이다.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었지만, 아이에게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세상에 책이 존재했기 때문에 아이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녀는 활자로 도배된 세상이 끔찍했다. 활자를 자신에게 닥친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활자는 거리를 두고 피해야 할 대상이었으며, 그녀에게 활자를 보여 주려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였다. 활자를 피하려는 버릇은 몸에 깊이 배어 있었다. 더 이상 의식하고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따뜻한 마음이나, 타인을 향한 애정, 인간적인 열정이 솟아나는 샘은 이러한 이유로 오래전에 말라 버렸다. 이제는 고립된 상태로 지내는 일이 자연스러웠고, 이러한 자신의 상태가 인쇄물이나 책, 손으로 쓴 글자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행위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커버데일 가족은 참견꾼들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려는 선의를 품고 다른 사람 일에 끼어들었다. 타인에 대한 품평을 양해해 준다면, 자일즈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의 말을 인용하여 ‘그들의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기적인 인간이 되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들은 자일즈가 본능적으로 아는 사실, 이기심이란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자신의 방식대로 살라고 요구하는 것임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신에게 투사했다. 독실한 여성은 야박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녀는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한 험담을 마음껏 늘어놓지는 않았다. 그들에게서 결점을 발견하고 그들을 싫어하는 존재는 자신이 아닌 하느님이었다. 그들이 상처를 입히는 존재도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이었다.

 

하지만 유니스는 결코 사람들을 다룰 수 없었다. 그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말해 그들이 내리는 가정과 결론을 알아차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결점이 탄로 나기 직전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결점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 나머지 그러한 생각에 지배되어, 실제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오해하고 말았다. 멜린다가 이미 눈치챘는데도 자신을 놀리느라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추측한 바를 확인하기 위해 퀴즈를 풀자고 한다고 생각했다.

 

유니스는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이후 처음으로 조지의 시체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다음에는 응접실로 다시 들어가 재클린, 멜린다, 자일즈의 시체 역시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연민도 회한도 일지 않았다. 사랑, 기쁨, 젊음, 평화, 안식, 생명, 먼지, 재, 낭비, 가난, 폐허, 절망, 광기,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사랑을 제거하고 생명을 파괴하고 희망을 부수며 지성의 가능성을 훼손하고 기쁨을 종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