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주와 연

 

바람핀 아버지와 내연녀의 딸로 환생(?)한 주인공의 복수극

오컬트 복수극이라 도파민 싸악— 중후반까지는 아주 찰지게 읽었다.

후반부에 다소 생뚱맞게 등장하는 인물 때문에 살짝 티피컬한 결말이 예상되면서 긴장감이 좀 떨어지긴 했는데, 그것도 뭐 오케이.

결말은 취향에 따라 마음에 들 수도, 아닐 수도 있을 듯.
난 굳이 마무리를 맞추기 위해 뒷부분이 사족처럼 붙은 느낌이라 아쉬웠다

 

외도하던 때처럼 자기 손을 보석 다루듯 은밀하게 쓰다듬는 남자의 정을 부풀려 해석하는 일은 계모를 정신 착란에 준하는 환상 속에 가두었다. 그것은 사랑의 교묘함이었다. 덫에 빠진 여자들은 스스로가 아랫사람이 되는 줄을 몰랐다. 그런 여자를 도구로 사용하는 아버지는 서운함이라는 감정을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그러나 사랑의 이면에는 이토록 꼴사나운 모습도 있는 것이다. 그깟 사랑이란 작위적이고, 이기적이며, 이성에 나사를 하나 풀어야만 발현되는 기이한 독점욕일 뿐이다. 생리적 혐오감밖에 들지 않는 애정에서 지린내가 진동했다. 순간을 과대평가하는 자들은 늘 사랑이라는 가면을 쓰고서 염병을 해야만 과잉된 감정을 소화해냈다. 이 빌어먹을 짐승들은 사랑 타령을 하는 와중에는 단 한순간도 타인을, 딸인 나조차도 진정으로 생각한 적이 없었다. 치열히 자기 욕망만으로 굴러가는 가정에서 나는 그저 이음새일 뿐이었다.

 

결혼이란 본디 그 자체로 독소를 품은 계약이라 체결되는 순간 이미 반쯤은 기망에 기대어 있고, 체결 이후에 불공정을 호소한다 한들 돌이킬 길은 대체로 막혀 있다. 더 교묘히 사기를 친 사람이 이기는 불합리한 구조라 돈이 많은 놈보다는 머리를 잘 쓴 놈이 늘 이긴다. 이 사실을 영영 모를 줄 알았던 계모도 아버지의 낯짝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며 서서히 현실을 보았다.

 

사랑한다는 거짓말은 완력이 좋아 파렴치한 인간의 가슴까지 쥐어짰다. 더 아프게 만들기 위해 더 자주 말해야만 했다. 사랑한다고. 사랑하니까 나를 이리 망친 스스로를 원망하라고. 진정한 사랑은 사랑이라는 낱말의 부재로 완성되듯 나는 무정을 완성하고자 사랑이라는 말을 아낌없이 퍼부었다.

 

싸움을 면하고 싶어 외면을 선택한 건 분명 엄마의 방심이었다. 엄마는 방심이 차라리 소란보다 낫다며 작위적으로 안도했다. 그 안도 또한 곧 변명이 됐다. 엄마는 사태를 바로잡지 않았다. 갈등을 피하려는 태도였는지, 이미 기대할 바를 잃은 사람의 관성이었는지 분명하지 않았다. 다만 기계적 인내가 부부 관계를 오래 끌었다는 점은 분명했다. 희한한 것은, 때때로 아버지는 엄마의 인내를 고마워하기보다는 몹시 불쾌해했다. 보라는 아버지의 결혼을 ‘성급한 선택’이라 정의했다. 마치 처음부터 둘의 관계에 엄마가 잘못 끼어들었다는 듯이. 엄마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한발 물린 채 무너지는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내 오래전에 바닷가에서 아이를 잡아먹던 악귀로 살 때 관세음을 얼마나 시기하였는지 아느냐? 내 모든 삶은 그를 모욕하며 부정하는 일로 소모됐다. 그러나 그가 나를 처벌 없이 품어줬고 내가 그 포옹을 벗어나지 않았으니, 곁에 있을 때만이 어둠으로서도 빛날 수가 있었지. 함께할 때면 눈물 같은 원한마저도 그가 부는 입김의 온도로 모두 녹아버렸다. 나는 연인을 떠나지 않을 때만 악귀가 아닌 신으로 살았다. 그러나 너도 스스로 선택하지 말라는 말이란다. 선택하면 나쁜 일만 반복되니까."

 

"살아감이 축복이 아니라 형벌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나요? 아주 오래전 동화에서 봤는데요. 우리는 매 순간 누군가를 가해하며 살잖아요. 그러니 살아감은 형벌이고, 죽음만이 축복이래요. 매일 삶을 소진하고 죽음에 가까워진다면, 사실은 매일 축복을 받고 있는 거죠. 사람은 자꾸만 죽고 또 태어나요. 그 굴레를 반복하는 게 숙명인데, 죽을 때마다 굴레에서 조금씩 벗어나요. 먼저 떠난 이들은 숙명에서 일찍 자유로워졌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서럽지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