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찌니주의보

 

정지아 작가의 신작!

항상 그렇듯이 생각해 볼법한 이슈를 가장 라이트하고 재치있게 그려내는 문체가 너무 매력적이다.

기분좋게 호다닥 읽어내림

빨리 다음 작품 내 조요~

 

쑤언이 야물딱지게 큰소리로 외쳤다. 백주대낮에, 그것도 가을볕이 거침없이 쏟아져 눈이 부실 지경인 장씨댁 시멘트 마당에 레즈비언이라는 말이 동네 떠나가라 울려 퍼졌는데, 이상도 하지, 그 순간 레즈비언이라는 말에 내포된 은밀함, 비밀스러움 같은 것들이 햇빛 맑고 바람 좋은 오늘 같은 날 빨랫줄에 걸린 빨랫감처럼 순식간에 꼬들꼬들 말라 바삭바삭 부서지고 마는 것이었다. 레즈비언이라는 말이 이제는 촌구석 노파나 영감들 입에 다방 레지라는 말과 다를 바 없이 마구 오르내려도 괜찮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쑤언의 목소리가 평균 연령 72세의 수평마을로 쩌렁쩌렁 퍼져나가는 그 순간 성진과 혜진의 심정은 그러하였다. 

 

할매 하나가 자고 쫓아내야 쓴다는데 워째야 쓸까요?
이장의 말 어디가 심기를 건드렸는지 알 수 없으나 집주인이 발끈했다.
내 세입자를 왜 자기가 쫓아내? 이상한 할머니네. 아까 전화한 할머니죠? 전화도 교양 없이 하드만.
그렇다! 수평마을 사람 모두 선생이라 깍듯이 알아모셨던 윤 선생이 실은 교양조차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돌도 지나지 않은 어린아이를 두고 사람 구실하기는 어려운 대가리라니, 교양이라고 그때부터 밥 말아 먹었다는 확실한 증거이지 않은가! 

 

밤이 깊을수록 처연해지는 봄밤의 소쩍새 소리, 귀가 따갑도록 쉴 틈 없이 울어대는 오뉴월 개구리 소리, 머릿속을 두드리는 한여름 낮의 매미 소리, 가을밤 더욱 소슬해지는 고음의 귀뚜라미 소리, 때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듯한 깊은 밤 고라니의 험악한 울음소리가 어떤 벽도 없는 듯 여과 없이 귀에 닿았고, 하여 이 시공간을 무수한 동물들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시시각각 인식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늦가을부터는 밤이 고요해졌다. 고요해지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게으름 피우는 모양이 또 속을 뒤집었다.
이기도 못 함시로 술은 왜 처묵어!
질라고 마신다와? 술 이게(이거) 머 흘라고? 니는 이길라고 술 처묵나? 술허고 쌈박질허나?
그럼! 한마디라도 지면 쑤언이 아니지. 맞는 말을 아무지게도 쏘아붙이는 바람에 이장의 말문이 또 막히고 말았다. 이게 다 양촌댁이 버릇을 잘못 들인 탓이다. 장마철의 호박넝쿨처럼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는 쑤언의 한국어 능력은 주로 말싸움을 할 때 유감없이 발휘됐다.

 

지난날 자신의 행실이 떠올라 민망하기는 하였으나 남자 체면에 질 수는 없는 노릇, 이장은 냅다 받아쳤다.
하모! 남자허고 여자허고 똑같가니!
멋이 다른데?
옛날이라면, 지금도 윤 선생이라면 꼬치도 없는 것들이! 날벼락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는 걸, 촌구석 월급 사십짜리 이장도 알고는 있었다. 윤 선생네 사건으로 깨우친 바도 없지 않았다. 장씨댁 말년에 팔자가 편 것도 말딸 미자 덕이요, 딸만 둔 절골댁 말년이 아들 둔 윤 선생 말년에 비할 데 없이 평화로운 것 역시 아들 없는 덕이었다. 석구 한 짓을 보고는 아들 둘뿐인 자신의 미래가 심히 걱정스럽기도 했더랬다.
뭐? 느그는 꼬치 달렸다고? 젓도 없는 것들이 반의반의반도 안 되는 꼬치, 젓도 딸랑 하나 달렸다고 지랄염병을 떨어쌓네. 조오겄다. 꼬치 달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