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미안하지만 싫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 정확하게 말해주는 쾌감을 기대했는데
뒤로 갈수록 좀 더 신변잡기적인 생활 에세이에 가까워진다.
‘어라?’ 싶다가도, 어차피 비슷한 세대가 나이 들어가며 느끼는 이야기들이라 그런지 계속 공감이 갔다.
오히려,, 초반에는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서 '맞아!' 하면서 신나게 편을 먹다가
뒤로 갈수록,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달까.
작가의 말맛이 느껴지는 에세이다. 추천.
비판인 척하는 무례를 저지르면서 예의 바르게 귓구멍으로 삼키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은근히 많다. 메시지 못지 않게 그걸 전달하는 태도와 방법도 중요하지 않을까? 인생과 커리어에 대한 천기누설이라면 예외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까지 대단한 조언은 대충 던져 줘도 황송하게 받아서 뒷걸음질로 물러나는 게 맞다 ⋯⋯ 누군가가 나를 심심풀이 과녁 취급을 하고 있다는 판단이 들면 고분고분하게 경청할 마음도 사라진다. 때로는 태도와 방법이 그 자체로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 싫은 감정을 비겁하거나 부당하거나 무례하지 않게 해소하려는 노력과 고민은 필요하다.
pp. 60. ~ 61.
내가 틀리거나 착각한 게 맞다면 잽싸게 지적을 수용하고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런 다음 순발력을 발휘해 전속력으로 화제를 바꾸는 편이 낫다. 무식하면서 말까지 많은 사람보다는 그냥 무식한 사람이 되는 쪽을 권한다. 수습할 수 없는 사태를 수습하려는 노력이 길어질수록 상황은 하염없이 불리해지고 망신의 규모만 거대해진다. ⋯⋯ 무지를 합리화하기 위해 무리한 논리까지 동원할 필요는 없다. 꼬인 열등감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허점을 어설프게 변호하지 않는다. 어쨌든 몰랐던 걸 알아 가는 과정 자체가 삶의 큰 즐거움이 아닐까
p. 67.
하지만 범죄까지는 아니더라도 해롭고 뻔뻔한 이기주의라면 종종 겁난다. 내 시야 밖에도 누군가가 존재하고, 나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그 누군가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모르거나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사람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 어떤 면에서는 흉악한 범죄자보다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거나 이해할 의지가 없는 이기주의자에게 더 직접적인 위협을 느낀다. 연쇄 살인범을 실제로 대면할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갑질 이슈가 불거진 줄 서는 맛집을 다른 소비자가 불매할 타이밍에 노려 봐야겠다고 궁리하는 가벼운 수준의 소시오패스라면 흔하기 때문이다.
p. 76.
말끝마다 늙었다고 칭얼대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그건 아직 그렇게까지 늙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즐겨 하는 엄살의 레퍼토리다. 젊은 소비자의 취향에 전부 동의하지는 못해도 여전히 호기심을 갖고 기웃거릴 때는 많다. 현재 가장 첨예하게 새로운 문화 현상에서 아예 소외되고 싶지는 않은 욕심과 미련 때문이다. 어쩌면 작정하고 긁으려는 말과 행동에는 긁히는 게 당연하다. 일부러 멀쩡한 척하거나 무섭게 정색할 이유도 없다. 그냥 한 사람은 여러 전형의 조각을 모아 완성한 퍼즐일 수밖에 없고 그중 한 전형의 특징이 공격받는다고 해서 나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어떨까? 긁힐 때마다 우리 사회의 갈등을 염려하며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된다.
pp. 132 ~ 136.
아직 죽음 자체에 대한 공포는 옅다. 다만 죽음의 전 단계, 즉 나 자신이 낯설어지다가 나다움을 지키기가 어려워지고, 가족이나 친구의 눈앞에서 살아 있는 채로 사라져갈 가능성은 막연하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더라도 나를 나로 남게 해주는 건 뭘까 생각하게 된다. 내가 나였던 때를 알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 그들이 나를 대신해 붙잡고 있는 희망, 노화는 젊은 시절의 자신만만함을 내려놓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p. 145.
최선을 다하더라도 계획한 상당수의 목표는 결국 무산된다. 그러면 실망감과 함께 사는 법에 익숙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대는 솔직히 꺾인다. 나도 초등학교 졸업 전에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가 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런데 이후를 좌우하는 건 대단한 계획보다 지금 하고 있는 무언가일 때가 많다. 뭐든 하다 보면 거기서부터 예상치 못한 실마리가 잡힌다.
p. 154
논리적이고 효율적이기 때문에 감탄하게 되는 것도 있고 논리나 효율과는 거리가 멀어서 감동하게 되는 것도 있다. 정답뿐 아니라 오답에도 매료된다는 점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곤란하고 까다롭게 만든다. ⋯⋯ 1980~1990년대에 성룡의 액션 영화를 보러 온 관객들은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위험천만한 스턴트의 NG 장면 묶음이 쿠키 영상처럼 마지막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맞고 부딪치고 떨어지고 고통스러워하는 배우들을 보고 있으면 두 시간에 걸쳐 관람한 이야기가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픽션이라는 그럴듯한 가짜는 상당량의 진짜를 통해 완성된다는 걸 그때 어렴풋이 배웠다.
pp. 167. ~ 168.
시차가 있든 없든 오전 7시에는 눈을 뜨고 일과 내내 최대한 많이 움직이려고 애쓴다. 호캉스라는 개념은 평생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다양한 각도로 뒹굴면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굳이 비행기까지 타야 하나? 그런 걸 하기에는 우리 집 침대도 아주 넓고 안락하다
p. 181
나조차도 나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편리하고 유리하게 자신을 속이고 넘어갈 때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5톤짜리 짐을 끌어안고 내가 미니멀리스트라고 착각하며 지낸다. 인류애가 충만한 척하는 혐오론자로 살기도 한다. 숲 안에서는 나무에 집중하느라 전체의 풍경을 놓치기가 쉽다. 대상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보지 못하는 장면이 생긴다. 그래서 아마도 나라는 사람의 솔직한 근사치를 볼 수 있는 지점은 숲도 나무도 아닌 곳, 나와 남의 시선이 교차하는 어딘가일 거라고 짐작한다. 나도 나를 모르고 남도 나를 모르지만, 양방향에서 주워 온 퍼즐을 조합하면 비로소 몰랐던 그림이 드러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