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인비인

성해나 작가의 기담집.
과거, 현재, 미래를 배경으로 한 단편들이 이어진다.
과거를 다룬 이야기에서는 친일 행적이 남긴 업보가 그려지는데, 마침 최근 불거진 한 배우 조부의 친일 행적 이슈와 묘하게 겹쳐 읽혔다. 당연히 작가가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읽는 시기가 이래서인지 괜히 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일'에 대해 작가는 “욕조 속 온수에 잠겨 있는 듯한 이 무심한 평온은 언제까지 유지될까. 욕조의 물도 언젠가는 식을 테지만.” 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온수에 편안히 잠겨 있다가, 물이 점점 뜨거워지는 줄도 모른 채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는 개구리가 떠올랐다. AI를 대하는 지금의 우리 모습도 어쩌면 그런 쪽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었다.
전작 『혼모노』보다는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기담집이라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혼모노』 이후 다음 책을 조금 서둘러 내놓은 건가 싶은 느낌도 있었다.
오히려 각 작품 뒤에 붙은 ‘작가의 한마디’가 더 좋았다. 뭐랄까. 작가가 의도적으로 보충 설명을 붙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소설이 다하지 못한 몫을 작가의 말이 대신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말들이 소설 안에 조금 더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성해나 작가의 장편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폭력은 인간의 본질을 떼어내고, 가차 없이 한 덩어리로 묶는 데에서 기인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한 인간을 존엄이나 철학을 가진 개인이 아닌 ‘개돼지’ ‘-충’ ‘-녀/-남’ 따위의 멸칭으로 묶는 덩이 짓기는 주체성을 지워버리는 가장 손쉬운 형태의 모독이다. 731부대가 생체실험 피해자들을 ‘마루타まるた’로 칭한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누군가의 고통과 번민, 생과 사 같은 귀한 속성은 그 가차 없음 앞에서 하찮은 것으로 변질된다.
침대보를 갈아 씌우는 가족 곁에서 조부는 입술을 달싹였다. 부끄럽다. 극독이 폐를 녹이고 성대를 상하게 해 무슨 말을 하는지 명확히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그 말만큼은 분명히 들렸다. 부끄럽다. 지금도 나는 조부가 그 말을 한 이유에 대해 종종 생각해보곤 한다. 차를 타고 적선동을 지날 때, 천막 농성을 벌이는 사람들을 무심코 지나칠 때, 나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암묵할 때,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삶은 안락할 때. 부끄럽다는 조부의 고백을 이해하려 애쓰곤 한다.
감독님, 감독님은 소속이 어디예요? 어리둥절해진다. 소속. 내게 소속이 있던가. 한참 고민하는데 큐가 말을 잇는다. 모르겠죠? 근데 사람들은 매번 물어보잖아요. 소속이 어디냐? 학교는 어디 나왔냐? 직장은 다니냐? 소속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근데 속해보니까 그래요. 찐따들이어도요. 모이면 단단해져요. 그리고 되게 웃긴 게 그 안에 있으면요. 나도 조금 쓸모 있어지는 것 같아요.
기계가 곧 예술의 영역까지 침범할 수도 있겠다고 경계했던 것도 같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인간이 기계에 질투심을 느낄 거란 내 추측은 빗나간 듯싶다. 인간은 기계의 속도에 감응하기보단 무감하다. 나날이 발전하는 AI의 추론, 학습, 모사 능력에 벌써들 익숙해졌다. 심드렁한 얼굴로 AI로 생성된 광고를 보고, 챗GPT에게 법률 상담을 받으며 딥페이크로 합성된 얼굴과 목소리도 별다른 의심 없이 취한다. 인공지능이 쓰고, 답하고, 판단을 거드는 세계에 다들 무감해졌다. 욕조 속 온수에 잠겨 있는 듯한 이 무심한 평온은 언제까지 유지될까. 욕조의 물도 언젠가는 식을 테지만.
